본문 바로가기
  • 응급실 의사의 이야기
넋두리/응급실&중환자실 이야기

탐사기획 스트레이트, 의사들은 어디에?

by 응닥하라 2023. 6. 18.
반응형

 일요일 저녁 MBC 탐사기획 스트레이트에서 ”소아과 대란, 의사들은 어디에? “라는 제목의 프로그램을 방송했다.
 영상에서는 언급되지 않았으나, 나름 필수의료라 생각하는 응급의학과 전문의로서 영상을 본 소감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아래 글은 피부나 미용업계, 1차 개원의의 입장이 아닌 2차병원에서 중환자실, 응급실 근무를 하는 응급의학과의 입장임을 알아주셨으면 한다. 

https://www.youtube.com/live/8CI-yg_eo34?feature=share

 

* 탐사기획 스트레이트에서 소개한 사례

- 소아과 진료를 위한 오픈런, 새벽부터 소아청소년과 진료를 위해 줄서는 사례
- 소아청소년과를 개원했다가 망한 사례
- 어린이날 연휴 급성후두염으로 사망한 어린이의 사례
- 전북에서 세아이의 진료를 위해 30분~1시간 거리에 있는 병원을 이용하는 엄마의 사례
- 용인에서 교통사고가 났으나, 수용가능한 병원이 없어 의정부까지 이송을 하다가 구급차에서 심정지가 발생한 환자의 사례
 

* 지방에서 무너져 가는 의료계 현실

- 전북대병원 소아청소년과를 지키는 전공의와 소아청소년과 교수의 인터뷰
- 전북에서 소아중환자 세부전문의 자격을 갖춘 유일한 소아청소년과 교수의 인터뷰
- 경남 산천군, 강원도속초의료원, 충북 청주 소재의 종합병원에서 고액연봉을 내세우며 의사를 모집해도 구인이 되지 않는 상황
- 경기도의료원 포천병원, 응급실과 24시간 분만 가능한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서만 연 20억 원 적자를 보며 운영을 하고 있다.
- 진주의료원 폐쇄와 그로 인한 의료공백으로 새로 진주의료원을 건설 및 운영을 추진하고 있지만, 기재부의 허락이 떨어지지 않는 상황
 
 진료를 받지 못해 사망하는 환자들의 사례를 소개하며 필수진료과목을 위한 의사수가 부족한 현실을 보여줬다.
 유럽이나 북미와 비교해봐도 부족한 공공병상 비율, 인구 1000명당 의사수로 인해 환자들이 적절한 진료를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며, 인구 고령화로 의료에 대한 수요는 늘어날 것이고, 시간이 지날수록 이러한 문제는 가속화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지적하고 있다.
 
 의료계에서 일하고 있는 나조차도 놀란 부분이 있었다. 의대에 진학한 이후로도 인기과를 지원하기 위해 학원을 다니는 경우가 많다는 것에 놀랐고, 소아청소년과 학회에서 No-kids zone을 외치며, 탈소아과를 하기 위한 학회가 열린다는 사실도 놀라웠다.
 

* 무너져가는 필수의료, 의사수 부족이 전부인가?

 역시나 스트레이트에서도 무너져가는 의료계 현실을 부족한 의사수에만 촛점을 맞춰서 이야기하고, 좀 더 깊은 문제를 확인하고 다루지는 못했다는 느낌을 받는다. 우리나라의 필수의료가 무너져 가는 이유는 바로 "제대로 돌아가는 종합병원"을 운영하기가 너무나도 어렵다는데 있는 것 같다.
 
 중간 인터뷰에 나오는 서울대학교병원 응급의학과 소아분과 전문의인 '김도균 교수님'의 인터뷰에서 알 수 있듯이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필수의료 시스템은 여러 사람들의 노력으로 유지되어온 시스템이다. 대학병원 의료현장에서 일해본 사람들이라면 모두들 느낄 것이다. 이런 기형적인 시스템이 지속가능한 시스템일 것이라고 생각할 수 없다. 비교적 젊은 의료종사자(의사는 물론, 간호사, 간호조무사, 구조사, 방사선사)들의 갈림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포천의료원에서 응급실과 24시간 분만장을 운영하기 위해선 연 20억원의 손해가 발생한다고 한다. 응급 분만뿐만 아니라 응급 수술(일반 외과 및 흉부외과적 수술), 심혈관조영술, 뇌수술, 뇌혈관중재술, 응급내시경이 가능한 체계를 유지하려면 손해가 어느 정도가 될까? 
 
 

* 필수의료를 유지하는데 도대체 왜 돈이 많이 드는거야?

 중환자 한 명을 처치하는데 얼마나 많은 인력과 설비가 필요한지, 한 가지 사례로 최근 겪었던 장폐색 환자의 사례를 예로 들어보겠다. 중환자실에서 근무하던 중 발생한 장폐색 환자의 이야기다. 외상성 뇌출혈로 중환자실에 입원했던 80대 할머니는 신경외과로 입원하여 뇌수술을 받고 안정화되어가던 중, 반복적인 구토를 하며, 흡인성 폐렴이 반복적으로 생기는 바람에 패혈증이 생기고, 복부 팽만으로 활력징후가 불안정해져 가던 중 중환자의학과로 전과되었고, 주말에 당직을 서던 나는 환자의 장폐색을 해결하기 위해 내시경적 스텐트 삽입술을 소화기내과 전문의에게 의뢰하였다. 마침 토요일이라 주말 외래를 보던 과장님이 있어, 외래가 끝난 후 흔쾌히 내시경을 해주기로 하였다.
 이렇게만 말한다면 상황은 매우 간단해 보인다. 하지만, 소화기내과 전문의 한 명만 있으면 내시경이 가능할까? 당연히 아니다. 심지어 중환자실에 있는 활력징후가 불안정한 환자를 내시경 하는 경우엔 더욱 그렇다. 
 이 환자의 경우엔 단순 내시경이 아닌 스텐트 삽입을 위한 내시경을 시행해야 하므로, x ray 투시 검사가 가능한 촬영장비가 있는(angio room 또는 angio room, 요즘엔 hybrid operating room 이라고도 부름)에서 내시경을 해야 한다. 이러한 설비를 운용하는 비용적인 측면은 나도 잘 모르기에, 환자가 중환자실에서 투시 내시경을 위해 x ray 투과 장비가 있는 angio room까지 이동하고 시술을 마치고 다시 돌아오는 데까지 관여한 인력을 한번 열거해 보도록 하겠다.
 이 환자를 담당하는 중환자실 간호사가 1명, 그리고 그 간호사를 관리/감독하고 검사실 직원들과 소통해 주는 차지 간호사가 1명이 있고, 이 환자를 중환자실 베드에서 검사실로 이동할 때 나를 포함한 2명의 간호사가 함께 카트를 밀고, 엠부(ambu bag)를 짜고, 환자를 모니터링하면서 이동하였다. angio room x ray장비를 운영하는 간호사와 기사가 한 명씩 출근을 하여 도왔고, 내시경실 간호사와 간호조무팀에서 추가로 4명의 직원이 출근을 하여 내시경 장비를 옮기고, 내시경을 하는 동안 보조를 하였다.
 소화기내과 선생님이 내시경을 하는동안 나는 환자의 활력징후를 보며, 기계호흡장치와 투약되는 약물 조절을 하였다.
 본래 이 환자를 담당하는 중환자실 간호사와 당직의를 제외하고, 이날 이 환자를 위해 5명의 간호인력 및 1명의 의료기사 추가로 출근을 하였고, 소화기내과 선생님은 2-3시간 퇴근이 늦어졌다. 결과적으로 이 시술을 위해 추가로 7명의 의료인력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결장경하 협착 확장술-스텐트삽입에 대한 의료수가는 얼마일까? 대략 병원에서 시행하는 내시경적 스텐트삽입술의 수가는 30만 원 정도이다. 
 
 이런 응급내시경 또는 시술이 필요한 상황은 24시간 365일 언제든 생길 수 있다. 과연 종합병원이 이러한 시술이 365일 24시간 가능하도록 유지하려면 어느 정도의 인력과 비용이 필요할까?
 
 

* 의사의 수가 부족하다면 서울, 수도권은 어떤가?

 상대적으로 의사의 숫자가 많은 서울/수도권의 상황을 보자. 수도권에서도 병원 간 전원은 매우 흔하다. 
 

- 뇌출혈로 응급수술이 필요한 경우
- 대동맥 박리로 빠른 심장혈관 수술이 필요한 환자
- 심근경색으로 응급 관상동맥조영술이 필요한 경우
- 허혈성 뇌경색으로 응급 혈전용해술이 필요한 경우
- 급성 복막염이나 장폐색 등으로 빠른 개복수술이 필요한 경우
- 급성 담관염 및 총담관 결석으로 ERCP가 필요한 경우
- 외상으로 인한 대량출혈로 응급수술이나 응급 색전술이 필요한 경우
- 위장출혈로 응급 내시경적 지혈술이 필요한 경우
- 소아의 이물 흡인으로 응급 내시경 또는 기관지내시경이 필요한 경우
 
 이 외에도 전원을 하는 수많은 경우가 있겠으나, 잠깐 생각나는 경우만 나열해 보아도 10여 가지나 된다.
 의사의 수가 많은 서울인데도 왜 전원이 필요한 경우가 이렇게나 많을까?
 바로 해당 시술을 할 수 있는 전문의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런 처치를 할 수 있는 전문의는 왜 없을까?
 이러한 일을 하려고 하는 의사가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일들을 하지 않으려고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모든 의사들의 생각을 내가 대변할 수는 없으나, 아마도 하는 일의 위험성이 너무 높고, 당직근무가 많고, 힘들기에 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소화기내시경을 하는 의사들은 많지만, 응급내시경을 통한 내시경적 지혈술을 하려고 하는 의사는 부족하다. 추가로 EUS, ERCP와 같은 특수한 내시경을 할 수 있는 의사는 부족하다.
 암수술이나 일반 외과수술을 하는 외과의사는 많지만, 응급 수술을 하려는 의사의 수도 부족하다.
 흉부외과 및 신경외과 전문의는 절대적인 숫자도 부족하지만, 그 마저에서도 응급질환을 보지 않는 척추질환이나, 하지정맥류치료만을 전문으로 하여 개원하는 경우가 흔하다.
 소아의 경우엔 외과적 수술 및 내시경 등 처치를 할 수 있는 의사의 절대적 숫자가 부족하다.
 
  대부분 즉각적인 시술/수술이나 처치가 필요한 경우는 응급상황인 경우가 많다. 빠른 시간 내에 처치를 하지 못할 경우엔 환자에게 심한 장애나 건강상의 악화가 남거나, 사망에 이를 수 있는 경우들이다. 이러한 환자 한 명 한 명을 보는 것은 의사뿐만 아니라 다른 의료진들에게도 상당한 부담으로 다가온다.
 위와 같은 전문 기술을 배우고 익히는데 드는 시간과 노력도 많이 들어고, 시술이나 처치를 잘 해내기 위해서는 전문의 혼자만 잘해서 되는 게 아니라 환자 처치에 관여하는 모두가 잘해야 한다.  또한 최선을 다하여 치료한다 하더라도 최선의 결과만을 얻을 수는 없는 일이고, 좋지 않은 결과로 환자가 잘못되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 흔한 경우는 아니고 의료진도 이러한 결과는 절대적으로 피하고 싶으나, 이런 상황이 생기게 된다면 병원의 잘못이 있던 없든 간에 환자와 보호자에게 안 좋은 소리 듣고, 심지어 법적인 소송에 휘말려 몇년을 시달리게 된다. (필자의 선배 중 수도권 대학병원의 응급의학과 교수로 재직중인 분 중에는 현재 총 3개의 소송에 휘말려 있는 분도 계신다.)
 상태가 안좋은 중환자가 입원하여 본인이 주치의가 된다면 환자가 안정화될 때까지 짧게는 수시간에서 길게는 며칠 이상을 그 환자의 즉각적인 처치를 위해 병원에 살다시피 하거나 24시간 언제든 전화받을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
 
 더군다나 이런 시술이나 처치를 한다고 하여도 병원 입장에서는 수익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손해일 것이다. 따라서 병원을 운영하는 입장에서는 이러한 환자를 보는 의사를 고용할 필요가 없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수요가 감소하니 이러한 일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각 대학병원들만 봐도 암환자를 유치하기 위한 병상 및 의료진은 끊임없이 늘어나고 있다. 물론 고령화 사회가 되며 암환자가 늘어가고 있기 때문인 것도 있지만, 암환자를 진료하는 행위는 돈이 되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필수의료/응급의료를 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없는 것이다.
 과연 공공의대를 설립하고 의사 숫자를 늘린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필수의료, 응급진료를 하려는 의사를 늘릴 수 있을까? 
 
 

* 의사의 수도 부족하지만, 분배가 문제요. 근본적으로는 수가, 정책의 문제이다.

 의사인 나도 개인적으로 의사의 숫자가 부족하다는 데는 동의한다. 의사의 수를 늘리면 힘들일이라도 사명감에 하려고 하는 사람도 있을 테니 현재의 열약한 필수의료 환경이 조금은 개선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의사의 수를 늘리는 문제보다 더 시급한 문제는 필수의료를 지원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일이다. 서울대학교병원 응급의학과 '김도균' 교수님의 말처럼 개인의 희생에 의해 유지되는 현재 필수의료체계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러한 필수의료를 지원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이러한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해야 할 일은 바로 수가를 정상화시키는 것이다. 응급실에서 심정지 환자를 처치하는데 응급실에 있는 모든 인력이 매달려 최소 30분에서 수시간을 다른 환자를 모두 제쳐두고 매달려야 하지만, 보험수가 28만 원을 받는 게 고작이다. 
 위에 적었던 예시에서처럼 토요일 주말 응급 내시경적 스텐트 삽입술을 하려면 추가로 7명의 인원이 출근을 해야 하지만 수가는 대략 30만 원 정도이다.
 소아청소년과가 망해가는 이유도 환아 한 명 한 명을 진료 볼 때마다 받는 돈이 고작 몇천 원 수준이기 때문이다.
 
 정책적으로 필수 의료에 해당하는 곳에 수가를 보존해주지 않는다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필수의료를 하려고 하는 사람들은 점점 줄어들 수밖에 없다.
 가장 이성적이고 계산적으로 머리가 잘 돌아가는 사람들이 의대를 진학하고 의사가 되는 요즘 시대에 이들을 설득하려면 필수의료라는 감정에 호소할 것이 아니라, 실제 운용 가능한 시스템을 만들어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무도 책임져주지 않는 세상 속에서 충분한 보상 없이 힘들고 고달픈 일을 계속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는가? 다른 선택가능한 옵션이 더 많은데 말이다.

 

* 의사들의 생각은 모두 같은가?

 당연히 아니다. 따라서 위에서 작성한 글 중 나의 생각도 편협한 시각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주셨으면 좋겠다.
 의사 협회라는 대표단체가 있긴 하지만, 의사협회의 대표를 선출하는 과정 자체에 의사들의 참여도도 높지 않고, 다양한 진료과목의 이해관계를 모두 대변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더군다나 개원한 의사들이 협회에 대한 영향력도 더 높다고 알고 있다. 
 또한, 영상 중간에 나오는 병원협회 같은 경우는 일반적으로 고용되어 일하는 의사들과 상반되는 경우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 (일반 회사에서 사측과 노조가 있다면, 병원협회는 사측을 대변하는 사람들이다. 이분들은 당연히 의사의 숫자가 많아지면 의사를 쉽게 고용할 수 있기 때문에 일반적으로는 의사의 숫자가 늘기를 바라는 입장을 취한다.)
 
 때문에 다른 의료직종에 비해 일관된 의견도 모으기 어렵고, 정치적인 힘도 떨어지는게 아닌가 싶다.

한시라도 빨리 의료 시스템의 개선이 이뤄져 필수 진료가 필요한 환자들의 불편도 해소되고 여기에 종사하는 의료진들도 고민없이 진료 할 수 있는 날이 오면 좋겠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