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응급실에 찾아온 90세 할머니의 이야기이다.
이전에 포스팅한 대동막판막협착*의 치료 시기를 놓치고, 호흡곤란이 심해진 상태로 일상생활을 영위하기는커녕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숨이 차고, 누우면 호흡곤란이 심해지는 상태였다.
(* 대동막 판막협착?2023.04.17 - [공부방/심장] - 대동맥판막의 노화의 결과; 대동맥판막협착(AS, Aortic stenosis)
한 달 전 응급실에서 진료를 보았던 적 있던 환자로, 당시는 지금보다 좀 더 호흡곤란의 정도가 덜했던 환자로 기억이 났었다. 대동맥판막협착(AS, aortic stenosis)으로 인하여 한 달 만에 심부전이 악화되어 가만히만 있어도 숨이 차는 상태가 된 것이다.
과거 차트를 살펴보니, 환자는 4-5년 전 뇌졸중이 생겼을 당시 시행한 심장초음파에서 severe AS(peak V = 3.9m/sec, ΔP ≥ 36mmHg, AVA < 0.8 cm2)가 발견되어 심장내과로 의뢰되면서부터 진료를 보기 시작했고, 당시에도 고령의 나이(당시 만86세)로 판막치환술을 하지 않고 약물 치료만 하고 지내기로 하였다. 그러던 중 2020년부터 어떤 이유에서인지 심장내과 외래를 다니지 않은 상태로 신경과 외래만 다니고 있었다. 결국 23년의 어느날 호흡곤란이 악화되었다며 응급실로 내원을 했었다.
그때 다시 심장내과 선생님과 환자에 대해 상의를 했고, 너무 고령이고 이미 판막치환술을 하기에는 환자 나이와 기저병력상 위험성이 너무 높아 치료를 하기 어렵다는 소견을 주셨었고, 진행된 심부전에 대해 이뇨제와 혈관확장제를 사용하며 증상이 조금 조절되는 상태로 다시 집으로 퇴원하게 되었었다.
지난 응급실 방문 이후 한 달 동안 심장내과 외래와 응급실을 왔다갔다하길 수차례, 점차 호흡곤란이 악화되며 집에서도 산소를 적용해야지만 견딜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 집에서도 코로 산소를 넣어주면서(home O2 2-3L/min을 적용) 지내던 중에 갑자기 증상이 너무 심해지고, 가슴이 답답하고 아픈 상태가 되어, 응급실로 다시 내원하게 되었다.
사실 이러한 병의 경과는 당연한 것이기에 나는 별다른 도리가 없음을 같이 내원한 보호자에게 설명하였고, 이번에도 약물치료를 하고 환자분의 증상이 좀 나아지면 퇴원하셔도 된다고 말씀드렸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이 하나 있었다. 환자분 스스로는 본인이 왜 이렇게 숨이 차고 힘든지 그 이유를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숨차서 말한마디 하는 것도 힘들어 보이는 상황 속에서 본인이 왜 이렇게 힘든지 좀 알려달라고 나에게 사정하듯 질문을 던져오셨다. 나는 이때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고, 같이 내원했던 환자의 아들과 딸 보호자를 불러서 물었다.
"환자분이 본인 질병에 대해 알고 계신가요?"
돌아오는 답은 '아니요'였다.
나이 90 드신 환자분은 본인이 어떤 병 때문에, 무슨 이유로 이렇게 힘들고 숨이 차는지도 모른 상태로 죽어만 가고 있었던 것이다. 외래 주치의도 그렇고.. 보호자도 그렇고.. 아무도 환자에게 환자본인의 질병과 상태에 대해 설명을 해준 적이 없었던 것이다. 1달 전 응급실에서 진료를 본 나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뭔가 잘못되었음을 깨닫고, 보호자들에게 물었다.
"환자분에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본인이 왜 이렇게 힘들고 아픈지 모르고 계시는 것은 잘못된 것 같습니다."
"환자분이 숨이 차고 뇌졸중으로 잘 걸을 수 없으시지만, 의식도 멀쩡하시고 사리분별을 잘하시는 상황인데, 환자분께 본인 상태에 대해서 정확히 설명을 해드리는 것이 좋겠습니다."
같이 내원한 보호자이 말했다.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말을 해드릴 수가 없었다고.. 조금만 힘내고 치료를 잘하시면 좋아질 수 있을 거라고 환자에게 말을 해왔다고 한다.
이런 보호자들의 마음도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나, 환자분에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고 판단한 나는 보호자들을 설득한 뒤 내가 환자분께 본인의 상태와 질병에 대해서 설명을 하겠다고 했다.
보호자분들의 동의를 얻은 뒤 환자분 옆에 의자를 가져가 앉은 뒤 환자분께 다음과 같은 말로 말을 뗐다.
"할머니.. 많이 힘드시죠?"
"할 달만에 다시 뵙는데, 그동안 상태가 많이 안 좋아지셨어요...
환자분이 가지고 계신 병은 대동맥판막 협착이라고 하는데.. 살면서 쉬지 않고 일하는 심장의 판막이 나이가 들어가면서 무릎 연골 닳듯이 노화가 돼서 생기는 병이에요.
판막이 안 좋아져서 심장 자체도 많이 힘들어하고 있는 상황이에요.."
환자분은 이유를 알아으니, 빨리 병을 고쳐달라고 하신다.
"죄송하지만, 할머니 나이도 많으시고, 몸 상태도 좋지 못하고, 판막치환술을 하기에는 시기가 많이 늦었어요.
지금 해볼 수 있는 것은 약으로 최대한 덜 힘드시게 도와 드리는 방법밖에 없네요. 죄송합니다."
환자분은 무슨 말도 안 되는 말을 하냐며, 역정을 내시며 본인의 상태를 부정하고
심장내과 교수를 불러달라고.. 그럼 치료해주실 거라고 말을 반복하셨다.
환자분 곁에서 환자분을 어르고 달래고 30여분의 시간이 지났고..
이제 좀 진정되어 보이는 환자분께 말했다.
"환자분께 남은 시간이 얼마인지 정확히는 모르겠으나 많지 않은 것 같아요. 살아생전에 만나고 싶은 가족들이 있으면 보호자분들께 말해서 얼굴도 보시고, 시간을 나누시고, 생전에 정리해야 할 일들이 있으시면 하나씩 마무리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마지막에 가족분들과 함께 시간을 많이 보내세요"
환자가 힘들어할 때마다 보고 있기 어렵다는 보호자들은 환자를 집으로 모셔야 하는지, 요양원/요양병원으로 모셔야 하는지 나에게 물었다.
"언젠가는 겪어야 할 일입니다. 이제 환자분도 본인이 왜 힘들고 아픈지 아셨으니, 환자분과 잘 이야기해보시고 원하는 대로 해주시는 게 맞지 않나 싶습니다. 저라면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에 있는 것보다는 마지막에 가족들이 지켜보는 중에 따뜻하게 생을 마감하고 싶을 것 같습니다."
환자분이 응급실로 내원한 지 4시간 여가 지났고, 이뇨제의 효과인지 호흡곤란도 다소 안정화되고, 환자분도 충분히 진정된 상태였다.
평소 먹던 이뇨제의 용량을 좀 더 증량키로 하고, 약물 조절을 위해 3일 뒤 외래를 잡아드렸다.
이렇게 환자분은 퇴원을 하게 되셨고, 오기로 한 외래 날짜가 지난 다음 확인해 보니 외래를 온 기록이 없는 상태였다.
아마도 힘든 현생에서의 삶을 내려놓고 타계하셨을지도 모르겠다.
환자분이 원하는 대로 마지막 생을 마감하셨길 바라며...
이번 포스팅을 작성한 것은 환자의 자기결정권, 존엄성있게 죽는 방법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기 위함이다.
우리나라만의 문화일까?
나이든 환자에게 질병에 대해 잘 알리지 않는 경우가 흔치 않게 있다. 대학병원에서 근무할때 암환자들과 그 보호자들에서많이 보던 상황이다. 대학병원이 아닌 종합병원에 근무하면서는 암환자가 거의 없다시피 해서 그런지, 본인의 병을 알지 못하는 환자를 오랜만에 만났던것 같다.
이러한 고민은 내가 환자라고 생각해보면 답이 분명해지는 것 같다. 나라면 내가 왜 아픈지도 모른체 죽어가고 싶지않다.
나이들어 치매나 다른 질병으로 의미있는 대화가 되지 않는 경우가 아니라면 적어도 자신의 신체에 대한 자기 결정권을 갖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본인 질병에 대해 누구보다 본인 스스로 잘 아는것이 필요할 것이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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