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응급실 의사의 이야기
넋두리/응급실&중환자실 이야기

서로 존중하며 일할순 없는가?

by 응닥하라 2022. 10. 10.
반응형

지역응급의료 센터 응급실에서 근무한지 6개월째에 접어들었다.

 

군복무를 마치고 일한 처음 2개월 정도는 적응하느라 힘들었고,

이후에는 중환자가 많고, 코로나 환자가 다시 늘어나면서 일이 힘들어졌다.

요즘엔 코로나 환자는 줄고 있으나,

일하면서 생기는 타과 과장들과의 문제로 힘들어지고 있다.

 

일하면서 느끼는거지만, 

단순히 업무가 힘들어서 생기는 피로?보다 사람을 대하면서 생기는 피로감이 훨씬 큰 것 같다.

환자나 보호자들을 대하면서 생기는 감정 소모는 물론

타과 과장들과 이야기 하면서 발생하는 갈등으로 인해 더욱 힘들다.

 

병원마다 사정은 다르겠지만, 우리병원은 응급실로 내원한 환자가 입원을 할 때 입원을 위한 행정적인 절차인 입원지시는 응급의학과에서 하지만, 

실제 입원 컨펌은 환자가 입원하게 되는 분과의 당직의사(환자의 주치의가 될 사람이다.)가 컨펌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때문에 입원할 분과의 당직의사가 누구인지에 따라 입원이 수월하기도 하고 어려워지기도 한다.

바로 휴먼팩터(human factor)가 작용하는 것이다.

 

환자를 입원시켜달라고 당직의사에게 연락을 하게 되는데,

의사들 중 일부는 환자를 의뢰해 줘서 감사하다며 입원 시키시면 된다고 답변을 해주는 반면,

어떤 일부는 "이환자는 왜 **과로 입원해야 하죠?", "이런 검사는 하셨나요?", "꼭 입원이 필요한 환자인가요?" 등등 질문을 쏟아내며 빈정 상한 말투로 사람의 기분을 상하게 만든다.

나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함이 아님에도

어느샌가 나는 부탁하는 사람(허락을 구하는 위치)이 되어 있고, 상대는 승인을 하는 사람(허락을 해주는 위치)이라는 역학 구조가 만들어져 있고, 

나는 환자를 입원시키기 위해 내 감정에너지를 소모해가며 이들과 대화를 해야 하는 것이다.

 

일례를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호흡곤란을 주소로 응급실로 내원한 75세 남자를 가정해 보겠다.

이 환자는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이 있고, 과거 심근경색으로 인해 심부전이 조금씩 진행하던 상황으로 평소에도 집앞을 가볍게 산책하는 정도 이상의 활동은 하기 어렵다.

그러던 중 응급실 내원 2-3일 전부터 기력이 조금 떨어지고, 입맛도 없는것 같더니, 내원 당일에는 호흡곤란이 갑자기 유발되면서 119 신고후 응급실로 내원한 것이다.

본인은 열이 난지도 몰랐으나, 119가 측정한 활력징후 상에서 환자는 37.8도 정도의 미열을 보이고 있었다.

 

응급실에 도착하게 되면 발열 및 호흡곤란이 있기에 COVID-19 pcr 결과 음성이 확인될때까지는 음압격리실에서 진료를 진행하게 된다.

초기 검진을 마치고, 혈액검사를 하고, 검진 결과 및 환자의 기저병력을 고려하여 처치를 시행하게 된다.

2-3시간 이후 일차적인 검사 결과가 확인되고 환자는 x ray 상 폐렴이 의심되는 정황과 함께 평소 있던 심부전이 악화된 상태로 보였다.

 

이후 CT를 촬영하여 폐렴의 정도를 확인하고, 폐렴의 패턴을 확인하여 사용할 항생제를 적당히 고르게 된다.

 

이제 모든 검사가 끝났고, 환자는 입원이 필요한 상황이다.

심부전일 경우엔 심장내과(순환기내과)에서 치료를 하는 병이고, 폐렴은 호흡기내과에서 치료를 하는 병이다.

그렇다면 이 환자는 어디로 입원을 해야 할까?

 

평소 약도 잘 먹었고, 심근경색이나 특별한 부정맥으로 심부전이 악화된 소견이 아니라면, 폐렴으로 인해 심부전이 악화될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생각 할 수있다.

따라서 나라면 환자를 호흡기 내과로 입원시키고 싶을 것이다.

 

이러한 소견을 잘 정리해서 사내 메신저를 통해 호흡기내과로 입원을 해도 되겠느냐 문의를 하면, 

쿨하게 입원시켜주는 경우는 잘 없다.

 

환자 상태가 크게 나빠 보이지 않으면..

"이환자가 호흡기내과로 입원하는게 맞나요? 

폐렴은 심하지 않고 심부전이 심해서 호흡곤란이 심한것 같은데, 폐렴은 약만 쓰면 될것 같아요."

"외래로 보내주세요"

 

반대로 환자 상태가 나빠 보이면..

"중환자실 가야 하는거 아닌가요?"

"환자가 안좋아지면, 보호자들은 어떤 치료까지 하실 생각인거죠?"
"DNR(Do Not Resuscitate, 심폐소생술 금지) 요청서 받고 올리세요"

"상급 병원으로 전원 보내주세요"

 

이러한 멘트들을 기분나쁘게 하는 재주가 있다.

물론 이러한 결정은 환자를 실제 보지 않고, 메신저 및 EMR (전자의무기록)으로 환자 정보를 보고 이뤄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코로나 때문에

주변 병원들이 코로나 전담병원이 되면서 

내가 근무하는 응급실로 내원하는 환자의 수가 늘어났고, 

당연히 비례적으로 입원이 필요한 환자, 중환자의 비중도 늘었다.

때문에 감정 소모가 필요한 경우도 많아져 간다.

 

예전 인턴 전공의 시절을 떠올려 보면, 사람들끼리 대화를 하는데 있어서 퉁명스러운 반응이 나오는 것은 

그 사람이 여유가 없기 때문인것 같다.

환자가 많아지고 일도 힘들고, 피로는 누적되고 다른사람에게 까지 신경써서 대화하기 어려운 상태인 것이다.

 

이런 점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나, 

같은 직장에서 일하는 사람들끼리 서로를 배려하며, 편하게 이야기 할 수 있으면 좋겠다.

 

또한, 같은 직장에서 다양한 직군이 모여 일하게 되는 병원에서 

의사라는 직업은 다른 직업과 동등한 하나의 직업일 뿐이지, 특권이 있는 직업이 아니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

다른 직군의 사람을 대할때에도 기본적인 예의를 갖추고 서로 존중하는 마음으로 일했으면 한다!

 

 

무엇보다도

하루 빨리 응급의료 체계가 정상화 되기 위해

코로나 전담병원이 사라지길 바란다!!!!

곧 독감 시즌도 다가올 테니 말이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