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 평소와 다르게 한가로운 응급실 12살 친구가 응급실에 접수를 한다.
요즘은 한창 코로나, 독감 유행으로 발열을 주소로 내원한 환자들이 많아지고 있는 시즌이라 이번에도 열나서 온 환자겠거니 하고, 중증도 분류(triage)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나의 예상과는 달리, 12살 친구가 호소하는 증상은 "술을 마시고 생긴 오심" 이었다.
간호 초진 기록을 보고 정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백주 대낮에 막걸리를 한병 마시고, 울렁거림이 있어서 응급실로 내원 한 상태였다.
물론 혼자서 내원한 것은 아니고 할머니가 보호자로 따라 오셨다.
환아를 상대로 몇가지 질문과 검진을 마치고, 약 처방만을 원하는지, 정맥로를 통한 수액 및 주사약 투약을 원하는지 물어보았고
12살 꼬마 친구는 아주 당돌한 표정으로 수액처치를 요구하였다.
그렇게 정맥 주사와 수액을 투약하고, 12살 꼬마친구는 한 시간 정도 지난 후 증상이 호전되어 유유히 응급실을 떠났다.
이렇게 응급실로 내원하는 환자들 중에는 법적으로 윤리적으로 잘못을 저지른 상태로 증상이 생겨 오는 환자들도 있다.
이번에 만난 환자는 특별한 케이스였지만,
내 경험으로 음주운전으로 사고를 내고 다쳐서 온 환자, 경찰 수사 중(?) 또는 교도소에 있다가 갑자기 진료가 필요한 상황이 발생하여 응급실로 내원하는 환자, 폭행에 연류되어 다쳐서 온 환자 등 누가봐도 좋지 않은 사건사고에 연류되어 오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경우 '이런 환자들에게 도덕적인 판단을 하는게 옳은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도 사람인지라 도덕적으로 옳지 못한, 법적으로 문제가 되는 사람들과 말도 섞고 싶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행위를 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몇 년간의 진료경험의 결과로 나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의사라는 직업의 특성상 내가 윤리적을 판단을 내릴 필요는 없다고!
의사가 되면서 선언하는 히포크라테스 선서에도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오직 환자에 대한 의무를 지키겠노라. 인간의 생명을 더 없이 존중하겠노라.'
그래서 요즘에는 환자들에게 진료에 중요한 부분이 아니라면, 가타부타를 논할만한 질문 자체를 하지 않는 편이다.
그래서 술을 마시고 온 12살 친구에게도 '술은 어디서 구했는지', '술은 왜 먹었는지'에 대한 질문은 하지 않았다.
같이 내원한 보호자도 있었고, 그 친구에게 옳고 그름에 대한 기준을 세워주고 책임을 물을 사람은 내가 아니라 부모나 보호자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은 이런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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