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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응급실 의사의 이야기
넋두리/응급실&중환자실 이야기

새벽녘 응급실을 찾은 80대 할머니.. 그대 이름은 '어머니'

by 응닥하라 2025. 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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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록으로 생성해낸 나이든 아들을 보러 병원에 내원한 80대 할머니의 모습, 크게 슬퍼하기 보다는 담담한 모습을 보이고 있도록 그림을 그려달라 요청하였다.)

 

 80세가 넘은 할머니 한분이 응급실에 다급히 들어오신다.
 
- pH 6.8의 수치를 보이는 췌장염, 장폐색을 동반한 환자
- 대학병원에서 췌장암 수술을 받은 뒤 전이가 발견된 후로 치료를 포기하고 지내며 갑작스런 복통이 찾아온 환자
- 1년전부터 간헐적으로 호흡곤란을 보이던 대동맥판막질환, 관상동맥 질환이 의심되던 심정지 환자.
- 흡인성 폐렴이 의심되는 심한 호흡부전의 환자.

 한 명만 제대로 보기에도 벅찬 환자들이 여럿이 줄지어 온 탓에 크게 아파 보이지 않는 80대 할머니에게는 모두들 관심을 갖지 못했었다.

 심정지 환자의 처치가 어느정도 마무리되어 관상동맥조영술을 하러 검사실에 올려 보냈고
 아까 잠시 지나쳤던 80대 할머니를 확인해보니 환자가 아닌, 위에 열거된 첫 번째 환자의 보호자였다.

 

 그 환자는 50대 남성으로 결혼은 하지 않았고, 보호자라고는 어머니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심정지 환자가 오기 전 50대 남성 환자의 검사 상태가 너무 좋지 않았고

 환자가 술을 마시고 내원한 상태로 의사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았기에

 원무과 선생님께 부득이 보호자를 불러달라 요청하였던 것이다.

 

 그 소식을 듣고 새벽녘 응급실에 오신 어머님께..

 나는 안 좋은 소식을 전할 수밖에 없었다.
 환자의 상태가 좋지 않아, 열심히 치료하고 있는 상황이나 췌장염의 정도가 너무 심해 장마비가 유발되었고, 다장기부전 소견이 동반되어 있다는 소견을 말씀드렸다.

 이런경우 사망률이 높고, 그렇기에 중환자실에서 적극적인 치료를 해야 한다는 말과 함께..

 

 소견을 들은 보호자(할머니)의 반응은 너무나도 담담했고, 나지막하게

 

 "내가 너무 오래 살았다. 일찍 죽었어야 했는데.."

 라는 말을 옆사람이 겨우 들을 수 있을 정도로 말을 내뱉으셨다.
 너무나도 가슴 아픈 한마디.. 그 울림이 잊히지 않는다.

 

 50대에 본인 한몸 챙기지 못하고.. 술에 의지하여 가족에게 짐이 되는 그 환자를...

 정말이지 마음같아선 한 대 때려주고 싶었다.

 

 응급실에서 마주하는 다양한 사람들 중 내가 가장 싫어하는 사람들은 바로 본인 한 몸 돌보지 않고 가족들에게 짐이 되는 환자들이다.

 '나 스스로는 이러한 사람이 되지 않으리...'

 매일 다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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