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중환자실 근무 중...
응급실을 통해 입원할 환자가 있어 잠시 환자를 살피기 위해 응급실에 내려갔다.
그런데 입원이 결정된 환자의 맞은편에는 꽤나 젊어 보이는 청년이 아주 거친숨을 내쉬며 창백한 얼굴빚을 띠고 있었다.
응급실/중환자실에서 근무한 지 10여 년이 넘으니 얼굴만 봐도 중환자라는 것이 느껴지는 경우가 있는데, 바로 그 젊은 환자가 중환자처럼 보였다. (의사들은 이것을 환자의 때깔.. 관상 또는 의사의 촉으로 부르곤 한다.)
먼저 연락온 환자의 혈액검사 결과 및 영상 결과를 살피고, 환자를 검진하고 보호자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맞은편의 환자의 혈액검사 중 일부가 나왔다.
VBGA(venous blood gas analysis) 결과였다.
환자는 심한 대사성 산증(pH 6.98)을 보이고 있었으며, 이를 호흡으로 보상하기 위해 숨을 헐떡이고 있었던 것이다. VBGA 검사로 모든 것을 알기는 어려우나, 환자의 혈당 수치가 450 이상을 가리키고 있었기에 당뇨 합병증인 DKA(diabetic ketoacidosis)*의 가능성이 가장 높아보였다.
이런 경우 환자는 본인이 당뇨병이 있는지도 모르고 지내다가 당뇨조절을 하지 않고 지내면서 합병증이 생기게 되는 경우가 많다.
* 당뇨병성 케톤산증 (DKA, diabetic keoacidosis)가 궁금하다면?
https://emdoc1988.tistory.com/104
한두 시간 뒤, 기본혈액검사 결과들이 나오고 난 이후
응급실 근무자로부터 위 환자가 중환자실에 입원이 필요하다는 연락이 왔다.
일반 대학병원이라면 병동이나 sub-ICU 같은 곳에서도 치료가 될 수 있을법하지만, 우리 병원에선 일반 병동에서는 환자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면서 검사를 반복하는 것은 어렵기에 환자를 중환자실로 입원시켰다.
입원 후 환자에게 필수적인 병력 및 보호자 관계를 파악하였다.
환자는 27세 남자로
어릴 적 교통사고로 부모 모두를 잃고 다른 두 남매와 함께 할머니 아래서 커왔다고 했다.
성인이 되기 전 비호치킨성 림프종을 진단받아 대학병원에서 3년간의 투병생활 후 완치 판정을 받았다고 했으며, 이후 매년 주기적으로 추적관찰을 해오고 있던 중이었다.
겨우 사회생활을 하며 가족들과 열심히 살아오고 있던 중 체중은 늘어만 가고, 다음/다뇨/다갈의 당뇨 증상이 생겼다. 미처 몸을 돌보지 못하고 일만 열심히 하며 지내오던 중 호흡곤란과 가슴 두근거림이 너무 심해 우리 병원 응급실로 내원하였다.
술도 먹지 않고, 담배도 피우지 않는다고 하였다.
병원에서 일을 하다 보면, 정말로 기구한 운명으로 힘들게 살아오는 환자들을 보곤 한다.
이번에 만났던 이 환자도 그렇다고 생각한다.
어릴 적부터 부모를 잃고, 혈액암이라는 커다란 역경을 헤치고
이제 사회에 자리 잡고 열심히 살아가는데
DKA로 처음 당뇨가 진단되다니..
인생 난이도가 너무 높은 게 아닌가 싶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라곤 이 환자를 잘 치료해 주는 것뿐이다.
이러한 고난과 역경을 발판 삼아 더욱 높고 멀리 날아갈 수 있도록.. 말이다.
##. DKA와 관련된 다른 포스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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