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에서 일하다 보면 어느 날은 심근경색 환자가 우르르 오고.. 또 어떤 날은 뇌졸중 환자가 연달아 오는 진기한 경험을 하곤 한다.
며칠 전에도 이와 비슷한 일이 있었다. 하루에 장천공 환자를 두 명이나 보게 되었던 것이다.
장천공이 그렇게 흔한 경우는 아니었고, 두 명의 환자의 진단 과정 역시 다이내믹했던 탓에 포스팅해보고자 한다.
1.
어느 목요일 저녁 65세의 남성분이 소변을 보지 못하여 아랫배가 아프다며 응급실을 찾아왔다. 심장 전문병원답게 이 환자는 우리 병원에서 부정맥으로 인한 심정지로 입원하여 Pacemaker를 삽입한 적이 있었고, 중년 이후 남성이 흔히 진단되는 전립선비대증으로 비뇨기과 진료도 보고 있었다.
과거에도 전립선 비대증으로 소변을 못 보는 증상이 서너 번 있었던 것 같았고, 이번에도 익숙한 듯이 소변줄을 넣어 소변을 빼달라고 응급실로 달려오셨던 것이다.
이러한 경우는 흔한 경우이기에 평소처럼 기본 검진을 하고 소변줄을 넣는 처방을 하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근데, 환자의 배를 만져보니 뭔가 심상치 않았다. 복부 팽만이 느껴지기는 했으나, 방광이 위치한 아랫배보다는 복부 전반적으로 팽만과 함께 압통과 약간의 반발통이 느껴졌던 것이다.
환자분께 검진 소견이 이상해서 여쭤보니 1주 전부터 변을 잘 못 보고 토끼똥처럼 작은 구슬 같은 변을 보고 있다고 하였다.
소변 문제보다는 소화기계의 문제로 생각되었기에 빠르게 초음파를 가져와 환자의 방광 상태를 확인하였다. 내 예상대로 방광은 그다지 팽만되어 있지 않았다. 따라서 환자분에게 배 쪽 문제에 대해서 검사를 해봐야 될 것 같다고 말씀드렸다.
환자분은 본인의 과거 경험에 비춰보았을 때 이것은 반드시 소변을 빼내면 좋아질 것이라고 믿고 소변을 빼달라고 요청을 하셨고, 나는 환자분에게 한 가지 제안을 했다.
먼저 소변을 뽑아보고도 증상이 호전되지 않는다면 복부 x ray를 찍어보자고!
소변줄을 넣어 소변을 뽑아보았으나 대략 300cc 정도의 소변만 배출이 되었고, 환자분의 증상은 호전이 없었다.
나는 다시 환자분에게 가서 복부 x ray를 촬영해 보자고 말씀드렸고, 환자분도 배가 여전히 불편한지 이번엔 흔쾌히 허락을 해주었다.
그렇게 해서 촬영하게 된 환자분의 복부 x ray 영상이다.
이 복부 x ray 사진에서는 소장에 약간의 air-fluid level도 보이고, 더 큰 문제는 환자의 우측(사진에서는 척추뼈를 기준으로 왼쪽) 간 위쪽에 공기음영(free-air)이 있음을 확인하게 되었다.
본래 저 위치는 흉부와 복부를 나누는 횡격막 바로 아래 간이 위치해 있고, 정상적이라면 장 안쪽면이 아닌 복강 안쪽에는 공기가 있으면 안 된다. 복강 내에 없어야 할 공기가 있다면, 이는 곧 장 어딘가에 구멍이 나서 장내부에서 복강 안쪽으로 공기가 새어 나왔다는 말이 된다.
따라서 이러한 소견이 보인다면 반드시 장천공을 의심하고 복부 CT 검사를 해보아야 한다.
나도 x ray에서 위 소견을 확인하고 황급히 환자분에게 달려가 장에 빵꾸가 난 것 같으니 빨리 CT를 찍어봐야 될 것 같다고 설명을 드리고 이내 곧 CT를 촬영하게 되었다.
CT를 찍어보니 복강 내 군데군데 공기 음영이 산재되어 있었고, 때문에 어느 쪽에서 천공이 생겼는지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았다.
외과 당직 선생님과 상의하여, 환자는 복막염에 대하여 항생제를 사용하며 중환자실로 입원을 하게 되었고, 다음날 CT 영상 판독상 sigmoid colon(구불결장) 쪽에 천공이 의심된다는 소견이 확인되어 수술을 하게 되었고, 실제 구불결장에 천공 소견이 있음을 확인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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