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중환자실 근무를 하며 경험했던 케이스를 공유해보고자 한다.
의학적인 내용보다는 환자의 치료를 결정함에 있어서 "누가 보호자인가?"에 대해 생각해 볼 점이 있어 글을 적어보기로 하였다.
환자는 72세 남자로 당뇨병, 관상동맥질환, 심부전, 말초동맥질환으로 23년 초부터 우리 병원에서 진료를 봐왔던 환자이다. 그전에도 다른 병원들을 전전하며 심장질환에 대한 관리를 받았었는데, 상태가 점점 안 좋아지던 터에 우리 병원 심장내과 외래를 방문하게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외래에서 시행한 심장 관상동맥촬영술의 결과를 보니, 환자는 3VD(3 vessel disease)로 심장을 먹여살리는 3개의 관상동맥 혈관이 모두가 좁아져 있었고, 그 결과 중재술(PCI, 경피적 관상동맥 중재술-스텐트 삽입술)로는 치료가 쉽지 않은 상황으로 심장 혈관을 이식해 주는 관상동맥우회술(CABG, coroanry artery bypass surgery)를 권고받았던 상태였다.
평상시에도 NYHA Fc II~III 정도로 일상생활 시에도 호흡곤란을 느끼던 상태였으나, 경제적인 부담으로 수술을 받지 못했고...
그러던 중 어느날 갑자기 심근경색으로 인하여 심부전 증상이 심해지며, 흉통과 호흡곤란으로 응급실을 찾게 되었다.
** NYHA classification이 궁금하다면?
https://emdoc1988.tistory.com/31
응급실에서 시행한 검사 결과 환자는 폐부종을 동반한 심근경색이 생긴 상태였다.
응급하게 관상동맥 촬영술을 시행하였으나 이전과 마찬가지로 환자의 관상동맥 상태가 좋지 않아 관상동맥우회술이 필요하다는 소견을 받게 되었다.
환자분이 재정적인 부담으로 수술을 거부하게 되면서, 우선은 안정화를 위해 약물치료를 먼저 해보고자 중환자실로 입원을 하게 되었다.
중환자실에 입원하기 전 환자는 본인에게는 배우자나 자녀가 없으며, 병원에서의 보호자는 형제분들이 해주고 있다고 하였다. 2남 2녀 중 장남이었던 환자분의 가장 첫 번째 보호자로 남동생분을 지목하였고, 병원에서는 보호자분의 연락처를 확보한 뒤 환자의 상태를 설명하고 중환자실에 입원함을 알렸다. 이때 남동생 보호자분은 환자에게 필요한 치료를 모두 해달라고 의료진에게 당부하셨다.
분명 이 때의 보호자는 남동생분이었다.
연휴 3일을 잘 넘기고, 상태도 점차 안정화되어가던 중으로 다시 한번 수술적 치료를 받기 위해 사회사업실을 통해 환자가 진료비 지원을 받을 수 있는지를 알아보기 시작하였다.
다행히 환자분이 직업은 있으나, 월급이 적어 지원가능해보였다. 하루이틀 뒤 수술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감을 갖고 치료를 받던 도중 갑자기 다시 심근경색이 발생하였다. 연달은 심근경색으로 환자분은 급격히 악화되었고, 혈압이 떨이지면서 호흡곤란도 심해져 기관삽관을 하지 않고는 버티기 어려웠다. 따라서 기관삽관을 하고 다시 관상동맥 조영술을 시행하게 되었다. 관상동맥조영술 결과로 심장 관상동맥중에서도 가장 큰 영향력을 갖는 LAD(left anterior descending coronary artery)가 갑작스럽게 막히면서 발생한 심근경색이 확인되었고, 막혔던 부분을 뚫고 스텐트를 넣어주는 PCI 시술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몇일 사이 거듭된 심근경색으로 환자분의 심장은 기능을 많이 잃었고, 심초음파상에서는 심장 수축률이 30% 정도로 떨어져 있었다.
혈압을 높이기 위한 승압제, 산소포화도 유지를 위한 기관삽관 및 기계환기치료, 심신증후군으로 인한 신장기능의 악화를 보이게 되었고 조만간 투석치료도 필요해 보였다. 이 사실을 남동생 보호자에게 알리자, 남동생 보호자분은 환자에게 법적인 자녀가 있다고 말해 주신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환자에게는 90이 넘는 어머님이 계셨고, 자녀 2명(아들 1명, 딸 1명)이 있었다. 나중에 내원한 딸 보호자 분에게 확인해보니 환자분은 20여 년 전 아내분과 이혼을 하고, 그 이후론 자녀들과도 왕래 없이 지내왔다고 한다.
딸 보호자분의 연락처를 확보하여 연락을 드렸고, 현재 환자분의 상태가 위중하니 내원하여 환자 상태를 확인하시고 어느 정도까지 치료를 원하시는지 여쭤보았다.
아무리 자식이라고 하지만, 20여 년간 연락 없이 지냈다는 딸에게 이러한 연락을 하는 게 맞나 싶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90세가 넘는 노모는 환자의 의학적 상태를 이해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고, 법에서 정해둔 환자의 법적인 보호자는 배우자와 환자의 직계존속인 부모, 직계비속인 자녀들이기 때문이었다.
배우자는 이혼을 하였으니 법적인 책임이 사라진 상태이고, 존속인 어머님이 생존은 해 계시지만 환자의 상태를 이해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따라서 현재 가장 우선순위가 높은 법적 책임자는 자녀들이었다.
또한 이를 알리지 않고 나중에 환자가 사망한 뒤 가족들이 찾아와 환자에 대한 법적인 책임을 묻는 경우도 있기에 의료진 입장에선 추후 법적 시비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다음날, 졸지에 20년간 남으로 지냈던 아버지의 소식을 접한 딸은 당혹감을 표하면서도, 이번이 사망 전 얼굴을 볼 수 있는 마지막기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환자분의 면회를 오셨다.
환자분의 상태를 설명하고, 현재하고 있는 치료(기관삽관, 기계환기, 승압제 사용 등)와 앞으로 예상되는 치료(투석, IABP*, ECMO** 등) 그리고 심정지가 발생했을 때 심폐소생술을 원하시는지를 여쭤보았고, 내 생각과는 달리 할 수 있는 치료는 모두 해달라고 요구했다.
* IABP - Intra-Aortic Balloon Pump, 대동맥 내 풍선펌프로 심근 산소 관류를 증가시키고 후부하 감소를 통해 간접적으로 심박출량을 증가시키는 기계 장치이다.
** ECMO - ExtraCoporeal Membrane Oxygenation, 환자의 정맥혈을 뽑아내어 산화기를 통과시킨 후, 혈액에 산소를 공급하고 환자의 순환 및 호흡 기능을 보조하는 장치이다.
실제 환자는 지속적으로 혈압이 저하되는 상황에서 심장수술을 받기엔 상태가 너무 좋지 않아 IABP를 삽입하기에 이르렀다.
여기서부터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환자의 자녀분들이 실제 모습을 보이자, 지금까지 실질적 보호자 역할을 했던 가족들이 모든 결정권과 책임을 자녀들에게 넘기고, 환자의 치료에 한발 빼는 모습을 보였다.
환자분이 의료비 지불능력이 없는 상태에서 치료를 연장하면 할수록 가족들에게 발생하는 치료비 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다.
평소 보호자 역할을 했던 형제들이 환자의 치료 결정권과 책임을 법적인 보호자인 자녀들에게 넘기면서, 이것이 부담으로 다가온 자녀분들은 갑자기 돌연 연락이 두절되어 버렸다.
이렇게 환자의 가족들이 연락이 안 되면서 서로의 책임을 전가한 지 3일째, 그사이 환자는 한 번의 심정지가 발생하였고, IABP를 넣은 쪽 다리는 허혈증상으로 인해 괴사의 조짐이 시작되고 있었다.
더 이상 연락이 안 된다면 법적인 절차를 밟겠다는 문자를 보호자들에게 남겼고, 그다음 날 보호자들로부터 연락이 왔다. 이제는 더 이상 치료를 않고 연명치료를 중단하겠다고..
그 이후엔 환자의 연명치료 중단을 위한 법적 동의서(POLST)를 받고, 환자의 연명치료에 해당하는 승압제의 사용, 기관삽관, IABP를 중단하였다.
연명치료를 중단한 지 2-3시간 뒤 환자분은 결국 사망하게 되었다.
* 연명치료 중단과 관련된 포스팅
https://emdoc1988.tistory.com/110
병원에서 일하면서 느끼게 되는 다양한 감정들이 있다.
환자가 잘 치료될 때 느끼는 기쁨, 보람
환자가 나빠졌을 때 느끼는 슬픔, 우울함, 회의감...
이번 케이스에선 안타까움을 많이 느꼈던 것 같다. 경제적인 부담으로 병을 키워왔던 환자, 어떤 사연인지는 모르지만 가족들과 단절되어 살아온 지난 20년...
피는 물보다 진하다곤 하지만 남보다 못 한 가족도 있지 않는가?
이런 경우 진정한 보호자는 누구여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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