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든 사람은 추억을 먹고 산다.


늦은 밤, 아니 이른 새벽녘 혈변을 본다며 119에 실려 응급실로 들어온 60대 남성분이 있었다.
환자는 당뇨 신부전으로 투석을 받기 시작한 지 1년쯤 되었고
내원 전날 투석 병원에서 건강검진 목적으로 위/대장 내시경을 받았었다고 했다.
대장 내시경시 용종 2개가 발견되어 용종을 떼어냈다고 했다.
내원 시엔 창백한 얼굴과 다소 낮은 혈압, 식은땀을 흘리는 모습으로 일시적인 쇼크 증세를 보였고
침상에서 안정을 취하고, 수액을 맞으면서 점차 안정화되어 갔다.
출혈을 보기 위한 복부 CT에서도 현격성 출혈은 보이지 않았기에 날이 밝기 전 장정결을 시행하고 오전에 대장내시경을 다시 해보기로 하였다.
응급내시경 동의서를 받기위해 환자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환자의 과거 이야기를 30분정도 듣게 되었다.
용종을 떼어내고 피가 난거니 병원의 책임이 있는 게 아니냐는 말로부터 시작하여
본인의 과거사를 하나 둘 말씀하셨다.
당뇨 신부전을 진단받게 된 과정..
이혼을 하셨던 과거..
대기업에서 일해왔고, 최근에 해왔던 일들..
그럼에도 새로운 일을 찾기 위해
끊이 없이 노력하고 공부해 오는 과정 등..
짧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30여분의 시간 동안
환자의 인생을 가까이 들여다본 것만 같았다.
평소라면 불가능했겠지만,
바쁘지 않은 새벽녘, 다른 환자가 없는 시간이라
환자분의 이야기를 옆자리에 앉아 들어드렸다.
사연 없는 삶이 어디 있겠냐만은
환자분도 쉽지 않은 삶을 살아오셨던 것 같아 위로의 한마디를 건네었고
마침내 동의서 서명도 받았다.
그렇게 응급실의 하룻밤은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