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먹을 걸 먹었는데 괜찮나요? - feat. 오쏘몰 뚜껑
사람이 여럿 모이면 살면서 했던 특이한 경험담, 어릴 적 또는 군시절의 무용담 들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는 경우가 있다.
응급의학과 의사들은 응급실에서 실로 다양한 사건, 사고를 많이 접하기에...
응급의학과 의사들끼리 이야기할 자리가 생기면 서로 자신들이 경험했던 특이한 사건에 대해 자랑스럽게(?) 무용담을 늘어놓곤 한다.
이런 주제에 있어서 항상 빠지지 않는 것이..
이물을 먹은 환자에 대한 이야기 일 것이다.
실제로 응급실엔 아주 다양한(?) 물질을 먹어서 오는 사람들이 있다. 분별력이 없는 어린아이들은 물론 멀쩡한 성인 환자들도 도대체 이유를 모르게 다양한 것들을 먹고 응급실로 온다.
세제와 같은 액체류를 음료수로 착각해서 먹는 사람들도 많고..
옷핀이나 바늘을 먹어서 오는 경우도 있다.
이런 이상한 것들을 먹어서 응급실에 오면 어떤 검사를 하게 되는지 알아보기 위해
23년 11월 어느 날 나이트 근무를 하다 만났던 케이스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환자는 60세 남자분으로
특별한 질병과 증상 없이 잘 지내오던 분이었다.
저녁에 식사를 마치고 멀티비타민제로 유명한 오쏘몰의 뚜껑을 열어서 쿨하게 목에 털어 넘겼다고 하셨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가슴 안쪽 식도 쪽으로 불편한 느낌이 들면서 뭔가 걸린듯한 느낌이 지속적으로 들었다고 했다.
이상해서 본인이 먹은 오쏘몰 약통의 작은 플라스틱 쪼가리가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본인이 그 쪼가리를 먹었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불편감이 있고 쪼가리가 보이지 않으니 먹은 것 같아서... 응급실로 내원한 것이었다.
(응급실에 이물을 먹어서 내원하는 환자들 중엔 이번 케이스처럼 본인이 이물을 먹은 건지 안 먹은 건지 정확하지 않은 상태로 내원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
이런 경우엔 어떻게 해야 할까?
위와 같은 증상으로 응급실에 내원하게 된다면, 필요한 것은 실제 이물이 있는지 없는지 눈으로 보는 것이다.
이물감이 목 쪽에 있다면 이비인후과 검진장비를 이용하여 목안쪽과 혀 뒤쪽 공간인 후두(Larynx)에 이물이 있는지 확인하게 된다.
목보다 아래쪽에 이물감이 있다면 이물이 목구멍 아래로 내려갔을 가능성이 높으므로, 눈으로 이물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위내시경을 해야 한다.
하지만 모든 환자를 대상으로 무분별하게 내시경을 하지는 않는다.
그 이유는 내시경이 바로바로 안 되는 경우가 많고, 사람의 장은 생각보다 튼튼하기에 위장관 내부에 웬만한 이물이 있다고 하더라도 별다른 증상이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대부분의 경우엔 이물이 식도-위-소장-대장을 거쳐 대변으로 나오기 마련이다.
그렇지만 이물이 식도를 막아버리거나, 위장관에 구멍을 낼 수 있는 날카로운 모양이거나, 부식성의 성분이 있어 위장관을 손상시킬 염려가 있는 경우엔 이물을 제거해야 한다.
이런 경우엔 이물의 위치가 중요한데, 이물의 위치를 확인하기 위해 영상검사를 동원하게 된다.
X-ray 검사와 CT가 대표적이라 할 수 있겠다.
X ray는 손쉽게 검사가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으나, 물질마다 투과도가 다르고 심지어 비슷한 플라스틱이라 할지라도 그 성분과 x ray의 에너지 량에 따라 음영이 많이 달라지게 된다.
따라서 금속과 같은 뼈나 금속과 같은 radiopaque 한 물질은 x ray에서 확인될 가능성이 높으나, 다른 물질들은 확인되지 않은 경우가 흔하다. 심지어 사람이 부지불식간에 삼키게 되는 닭이나 생선의 작은 뼈 같은 경우에도 radiopaque 한 성질을 가지고 있으나 x ray에서 잘 나타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영상 검사를 할 땐 가능하면, 삼킨 것으로 추정되는 이물과 동일한 물질을 피검자의 몸 위에 올려두거나 바로 옆에 위치시켜 영상을 촬영하도록 한다. 그래야 그 물건이 x ray에서 잘 보이는 건지 아닌지, x ray 사진으로는 어떻게 보이는지를 알고 이물의 여부를 확인하는데 큰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된다.
이번 케이스의 환자도 x ray에서는 명확한 이물이 확인되지 않았다.
하지만 여전히 아랫가슴 쪽으로 불편감을 호소했기에 응급 내시경팀을 호출하기 위한 근거를 마련하고자 CT를 진행하게 되었다.
물론 CT를 진행할 때에도 위에서 언급한 이유**와 동일한 이유로 가능하다면 동일한 이물을 환자의 몸 위에 올려두고 CT를 촬영하였다.
이물을 먹은 환자의 CT 영상이다.
같은 재질의 이물을 CT로 촬영했을 때에는 근육과 비슷한 정도의 density를 보이고 있어 근육으로 이뤄진 식도안에 놓인 이물을 정확히 찾아내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다만 CT에서 이물의 크기를 측정해 보았을 때 대략 17mm 정도 되는 크기로 보였고, 식도의 하부 쪽에 비슷한 직경을 갖고 둥그런 모양과 그 내부에 공기가 차있는 모습이 확인되었다.
환자가 아래가슴 쪽으로 이물감을 호소하고 있었으므로, 대략 증상과도 연관성 있어 보이는 위치로 생각되었다.
위와 같은 소견을 종합하여 응급 내시경팀을 호출했고, 두 시간 정도가 지난 자정쯤이 되어서야 내시경을 할 수 있었다.
내시경 소견으로는 너무나도 허무하게 식도와 위에는 별다른 이물이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응급실에서 내시경을 기다리는 동안 해당 이물이 식도와 위장을 넘어간 것으로 생각되었다.
비록 이물을 찾아 꺼내지는 못했지만
환자분은 내시경 이후엔 가슴 쪽에 있던 이물감도 사라져 가벼운 마음으로 퇴원하셨다.